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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좋아하는 친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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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서윤 작성일17-11-29 09:51 조회2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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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게임을 좋아하는 십년지기 친구가 있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지만 몇 년만에 만나더라도 어제 만났던 것처럼 곧바로 'PC방 콜?' 할 친구였다. 저번주였다. 내가 1년 만에 연락해놓고는 다짜고짜 '치킨이나 먹자' 말했는데도 친구는 별 난처한 기색도 없이 곧장 광주로 올라왔다. 버스로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만나자마자 우리는 치킨집으로 향했다. 치킨이 나오자 친구는 두 손을 맞잡아 꼭 쥐었다. 지금 뭐하냐는 내 질문에 친구는 '치킨을 영접했으니 기도해야지' 라고 대답했다.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녀석의 태도에서 모태신앙인 나조차 가져보지 못한 경건한 신앙심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치킨 사 준다고 안 했으면 안 올라왔겠구나.

만족할 만큼 치킨을 뜯고 치킨집에서 나온 우리는 PC방으로 향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우리는 밤샘을 했다. 다음 날 우리가 PC방에서 나온 건 게임이 질려서가 아니라 배가 고파서였다. 아침 먹고 뭐 할까 묻는 내 말에 '다시 PC방 갈까?' 하는 친구를 보면서 나는 왜 내가 게임으로 밤샘을 하면서도 그래도 나 정도면 게임을 별로 하지 않는 편이라고 착각했던 건지 대충 감이 잡혔다.

나이가 들긴 들었는지. 아무래도 고등학교 때처럼 두 자릿수 시간 게임 플레이는 무리였다. 친구도 비몽사몽해 보였다. 이 상태로 집에 내려보냈다간 멀쩡하게 집은 찾아갈지 걱정이 됐다. 날을 새느라 배고프기도 했던 나는 친구한테 '라면먹고 갈래?' 라고 제안했고 친구는 갑자기 나한테서 거리를 벌렸다.

어쨌든 친구도 피곤하긴 했는지 그러자고 했다. 집에 돌아가 내가 라면을 끓이는 동안 방에 들어간 친구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피곤해서 그새 자는건가 싶어 찾아간 방에서 친구는 컴퓨터를 키고 문명을 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존경스런 병신이었다.

나는 라면을 먹으면서 친구의 문명 플레이를 감상했다. 문명은 말 그대로 자기가 고른 문명을 고대시대부터 키워 나가는 게임이었다. 친구는 불멸자 난이도를 플레이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먼 옛날 팔레스타인들에게 박해받던 유태인의 처참한 역사에 동질감을 느끼거나 스타를 할 때 자기 본진에 벙커링을 당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마조히즘적 변태가 아니고서야 제정신으로 즐길 수 없는 난이도였다.

하지만 십 년 게임 외길 인생 친구의 게임 수준은 역시 남달랐다. Be폭력 주의자인 간디에게서 다이아몬드를 털어냈고 옛 폴란드처럼 기병으로 탱크에 돌진했는데도 오히려 탱크를 잡아먹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플레이의 향연이었다.

그럼에도 친구가 게임을 클리어하긴 어려워 보였다. 사실 불멸자 난이도 문명을 클리어하는 건 서울FC가 바르셀로나를 이기는 것만큼이나 가망없는 일이었다. 온갖 지리적 이점과 전술, 역사적 배경을 유창하게 이야기하면서 어떻게든 게임을 이어가는 친구를 바라보면서 나는 얘가 왜 사학과가 아니라 공돌이로 학과를 지원했을까 심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친구의 영혼을 담은 플레이와 내가 졸린 건 별개의 문제였다. 나는 감기는 눈을 가누지 못하고 너도 적당히 하고 자라고 말한 뒤 스르르 자버렸다. 얼마나 잤는지 친구가 깨워서 일어났을 때 친구는 이미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 간다."
"...오야. 멀리 안 나간다. 아. 너 게임한 파일은 저장해 놓을까?"

아직도 졸려하는 내 질문에 친구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어리둥절한 나는 친구가 간 뒤 게임 파일을 열어봤다.
거기엔 게임 클리어 로그만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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