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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증권, '공모주 우대위크 시즌2' 이벤트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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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보라햇 작성일21-12-15 09:50 조회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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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주혜 기자 = KB증권은 기업공개(IPO)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에 부응하고자 공모주 청약 혜택을 사전에 미리 알고 준비 할 수 있도록 '공모주 우대위크 시즌2' 이벤트를 실시한다고 15일 밝혔다.KB증권은 자사 홈페이지나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다음달 17일까지 '공모주 능력고사'를 풀고 만점을 받은 국내에 거주하는 KB증권 개인고객 모두에게 국내주식 쿠폰 5000원권 1매를 제공한다. 지급된 국내주식 쿠폰은 MTS M-able(마블), M-able mini(마블미니)를 통해 국내주식을 5000원 이상 매수할 때 사용 가능하다. 다운로드일로부터 30일간 사용할 수 있다.또 투자인사이트 플랫폼 'SPEC(스펙)'과 함께하는 '공모주 주가 맞히기 이벤트'를 실시한다. 다음달 31일까지 'SPEC' 최초 회원 가입 및 SMS 본인인증을 완료한 고객이 대상이다. 이벤트 기간 동안 'SPEC'에 접속해 공모주 이벤트 태그가 있는 시장전망·투자의견투표(Poll Insight)에 1개 이상 투표하면 자동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홍구 KB증권 WM총괄본부장은 "LG에너지솔루션 IPO를 앞둔 상황에서 다양한 혜택을 누리며 공모주 청약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공모주 우대위크 시즌2' 이벤트를 준비했다"며 "공모주 청약을 통해 KB증권과 함께 하시게 된 고객들이 KB증권의 상품 및 서비스에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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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주석 동생 김영주 101세로 사망…한때 권력 '2인자'김정일 부상과 동시에 권력 내려놓고 여생 보내북한 김영주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자료사진) © 뉴스1(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15일 사망한 것이 공식 확인된 북한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1920년생인 김영주는 1950년대 초중반부터 북한 권력층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동당의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에서 부장까지 달며 형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냈다.중앙당에서 활동하기 전에는 모스크바에서 유학 생활을 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때문에 소련 유학파들이 김영주와 함께 권력 전면에 나설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60~70년대까지 당 중앙위원회 위원, 정치국 비서로 승승장구하며 김일성 주석을 보좌했다. 자연스럽게 그가 북한의 2인자로 여겨졌고, 김 주석의 유고시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지배적인 때였다.그는 1972년 남북 7.4공동성명에도 관여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북한의 2인자로 여겨지는 김영주와 컨택해 남북 대화를 추진하는 데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7.4공동성명에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함께 서명했다.김영주의 정치적 위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등장과 함께 달라진다. 1973년 김정일에게 당 조직지도부장 자리를 넘겨준 김영주는 1974년에 정무원 부총리에 임명되기도 했지만 이후 하루아침에 권력 핵심부에서 사라지고 만다.그는 자강도로 거처를 옮겨 평양과 거리를 둔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두고 후계자의 본격적인 등장과 함께 그가 '숙청'을 당했다는 설이 제기됐다.반면 그가 일신상의 이유를 들어 스스로 주변을 정리하고 평양을 떠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의 첫 후계 구도 수립 과정에서 내부 투쟁 등 정치적 파장을 잠재우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자강도에서의 생활도 정치적으로는 '유배'일 수 있어도 실질적으로는 안락하게 지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993년 12월 김영주는 정치국 위원과 국가 부주석으로 임명되며 중앙당으로 복귀한다. 한때 막강한 2인자였다 사라진 그가 약 20년 만에 갑자기 다시 나타난 것이다.이 인선을 두고도 해석이 한 가지로 모이지는 않는다. 1993년은 이미 김일성 주석이 권력을 아들인 김정일 위원장에게 물려 주고 실질적인 국정 운영 권한을 상당 부분 넘긴 상황이었다.때문에 김영주의 인선은 '권력으로의 복귀'라기보다는 백두혈통 원로에 대한 대우와 백두혈통의 정당성 강화를 위한 사상전의 일환이었다는 분석이 있다.반면 정치적 위상 자체는 낮아도 그의 복귀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후견인'으로서의 역할이 부여된 의미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복귀' 이후 김영주는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지 않는다.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라는 명예직을 맡아 핵심 국정 결정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2010년에는 당 정치국 위원 자리도 내놓았다.2015년 7월 지방의회 대의원 선거 때 투표하는 모습이 공개된 뒤로 사망때까지 공식석상에서 포착된 바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총비서는 사망한 김영주의 영전에 화환을 보냈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그에 대해 "당과 국가의 중요 직책에서 오랫동안 사업하면서 당의 노선과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했으며 사회주의 건설을 힘있게 다그치고 우리 식의 국가사회제도를 공고발전시키는 데 공헌했다"라고 평가했다.그러나 '국가장의위원회'를 꾸려 국가 차원의 장례를 치르는 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백두혈통에 대한 예우를 갖추면서도 절제된 모습을 통해 필요 이상의 해석을 낳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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